모종판에서 콩이 최선을 다해 잎을 피워내고 있다. 토종씨앗 보전단체 사단법인 토종씨드림 활동가 시절, 토종씨앗을 수집하기 위해 각 마을을 돌아다니던 때였다. 한 할머니가 허리도 못 펴고 거동도 불편한데 계속 농사짓고 계셨다. “할머니, 이렇게 힘든데 계속 토종씨앗으로 농사짓는 이유가 뭐예요?”라고 물으니, 할머니는 “아까븡게 그라제” 하며 자신이 가진 씨앗을 내주셨다. “어여 가져가.” 할머니는 애원하듯 우리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그랬을 것이다. 매년 아까워서 씨앗을 심었고, 아까워서 수확했다. 버리긴 아깝고 하니 또 씨앗을 털었다. 한해 한해가 흘러 어느덧 수십 년이 됐다. 할머니의 고생은 주름으로 고스란히 새겨졌다. 몸이 힘들어 더는 버티기 힘들 때, 우리가 씨앗을 이을 젊은 농부에게 전해준다고 하니 할머니는 우리에게 씨앗을 냉큼 안겨주셨다.2024년까지 활동하던 토종씨드림에서 나왔다. 2025년 다짐으로 “농사를 좀더 크게 짓자”고 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는 일 하나 없다고 짝꿍은 경남 함양 쪽 잡지사에 들어갔고, 나는 나대로 돈 번다고 아르바이트에 빠져 농사일이 뒷전이 됐다. 아직 수확하지 못한 양파와 마늘, 완두, 밀이 밭에서 풀에 치여 죽어가고 있었다.일이 좀 한가해지자 밭이 눈에 들어왔다. 꽃대를 올린 뒤 곧 씨앗이 터질 것처럼 말라버린 배추 씨앗을 거두고, 풀에 치여 못 자라는 양파가 보여 얼른 풀을 매줬다. 조금씩 드러나는 양파. 500원짜리보다 작은 양파를 보며 조금 더 일찍 풀을 매줄걸, 오줌 삭힌 물을 좀 팍팍 뿌려줄걸 하는 아쉬움이 흘러나왔다. 마늘은 관리를 안 했는데도 튼실하게 자라줬다. 장아찌를 담글 만큼 마늘종도 수확했다.완두와 밀이 심긴 밭을 갔다. 풀이 자라 정글이 돼 있었다. 그런데도 그 속에서 완두와 밀은 자기 자리를 올곧이 지켜내며 자신만의 열매를 맺었다. 완두는 여기저기 넝쿨을 뻗으며 최선을 다해 깍지 안의 콩을 키워냈다. 일부 밀은 다른 풀에 엉켜 끊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애들은 과감히 포기하고 건질 수 있는 것만 건져내기로 했다. 그래도 나 쌈채소가 심긴 텃밭 너머로 고즈넉한 한옥이 자리한 경기 남양주 숙소 수안채. 그늘 내린 평상에 앉아 베어 먹는 빨간 수박, 아궁이에 불 피워 지은 가마솥 밥과 고소한 누룽지…. 생각만 해도 정겨운 농촌 풍경이다. 요즘 이같은 시골 일상 속으로 휴가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이름하여 ‘촌캉스(농촌+바캉스)’. 청춘들의 촌캉스는 어떤 모습일까? 태양이 가장 높게 뜨는 하지(夏至)에 촌캉스 여행을 따라가봤다. 이번 여행이 펼쳐질 곳은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에 있는 한옥 숙소 ‘수안채’다. 수안채에 가까워지자 햇살을 머금고 자란 옥수수·파·마늘이 눈길을 끌고, 조금 더 들어가자 나무와 황토로 지은 고즈넉한 한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당 한편에선 밀짚모자를 쓰고 몸뻬 바지를 입은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올챙이·다슬기를 구경하고 있다. 도시를 떠나 살아본 적 없다는 한 20대 여성 참가자는 “너무 귀엽다”며 다슬기를 손바닥에 조심스레 올려보기도 했다. “감자야, 돌멩이야?” 도시 청년들은 감자 캐는 것도 재밌다. 청춘들을 위한 촌캉스 프로그램은 여행사 ‘지구놀이터’에서 기획했다. 그 시작은 학업·취업·결혼 같은 사회적 기대에 지친 청년들이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쉬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2024년 한달에 한번 진행하다가 올해는 한달에 두번으로 늘릴 만큼 인기가 많다. 이날도 2030세대 참가자 16명이 숙소 가득 모였다. 처음 만난 이들은 이름 대신 부를 별명을 정해 자신을 소개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시골살이를 접해보고자 촌캉스를 찾은 이가 많았다. 프로그램 진행은 여행사 소속 김효진 촌장이 맡았다. 그는 참가자를 두 팀으로 나눈 뒤 닭싸움 같은 어린 시절 놀이로 잊고 살던 동심을 다시 불러냈다. 이제 본격적으로 촌캉스를 즐길 차례. 첫 체험은 전 만들기다. 각 팀은 상대보다 더 맛있는 전을 만들기 위해 텃밭에서 감자를 캐고 고추·호박을 따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트 진열대에서 보던 감자가 알알이 달려 오니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